"어깨의 힘을 좀 빼라구.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으니까 그런 눈으로 사물을 보게 되는거야. 어깨에서 힘을 좀 빼면 훨씬 몸이 가벼워지잖아." "왜 그렇게 말하는 거야? 어깨 힘을 빼면 몸이 가벼워 진다는 것쯤은 나도 알아. 그런 말은 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구. 알겠어? 내가 지금 어깨 힘을 뺀다면 나는 산산조각이 난단 말이야. 난 처음부터 그런 식으로만 살아왔고, 지금도 그런 식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어. 한번 힘을 빼면 다신 본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구. 자기는 왜 그런 걸 모르는 거야, 응? 그걸 모르면서 어떻게 나를 돌봐 준다는 말을 할 수가 있어?"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우리는 상대방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답을 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상대방은 그저 공감과 호응을 원했을 뿐인데도 말이죠. 그러면서 당연한걸 조언하기도 합니다. 무거우면 내려놔라, 답답하면 산책을 해라. 잠이 안오면 근육을 움직이는 운동을 해라 등등. 그걸 몰라서 물어본게 아닐텐데요. 어쩌면 그냥 그렇구나 고개 끄덕이며 수긍해주는 말을 기대했을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 아무말 말고 그냥 야, 나와. 고기사줄게. 하는 말이 가장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나도 성장하고 남도 위로해주며 우리 모두 같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진동은 공기를 타고 전달됩니다. 음악은 진동의 과정을 들려주지만, 그림은 진동의 결과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고흐의 그림을 보고 감동하는 것은 , 고흐의 그림이 사진 같아서가 아니죠. 고흐의 절박한 떨림이 붓을 타고 캔버스에 고스란 전달된 흔적을 부지불식간에 느끼기 때문일 겁니다. 지금까지의 썰은, 나를 떨리게 하는 그 무엇을 찾아야 한다는 거죠. 그 떨림이 분노에 의한 것이든 환희에 의한 것이든, 티끌만큼이라도 스스로를 이끄는 일에 망설이지 말고 기꺼이 끌려가면, 또 다른 세계기가 펼쳐질 것이라는 얘깁니다. ⓒ 석정현 - 설화집. 성안당.
한국 사람들은 '용서 구함'에 익숙지 않다. '감사'에 대한 표현도 과거보단 나아졌지만 가까운 사이일수록 이런 도구들을 사용해 마음을 전달하기가 쉽지 않다. 평생 말도 많이 섞지 않고 데면 데면하게 지냈던 아버지에게 갑자기 감사와 용서 구함을 전달한다는 것이 어디 쉬울까. 하지만 그러한 순간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진심으로 감사와 용서 구함을 실행했을 때 일어나는 기적 같은 변화는 망설였던 순간이 아찔하게 느껴질 정도로 크고 값지다. ⓒ 김선중, 모든 것이 가능한 나는 누구인가. I 아이. 원너스미디어 출판.
모서리 이렇게 뾰족뾰족한 모서리를 밟고 걷는 게 삶인 걸 알지만, 우는 건 아파서가 아니라 네가 알아줬으면 해서였다. 닳지도 않을 모서리에 다음 발걸음을 옮기며, 단지 나는 이 길의 끝이 너이길 바랐다. 그런 희망만 있다면 모두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 geulbot_asteria https://www.instagram.com/p/CKBzvKaFKQt/?utm_source=ig_web_copy_link
댓글
네이버 공유하기
댓글 쓰기